여호와 이레 (창 22:1-19)
- Glory Community
- Jan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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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an 23, 2024
"Father, where is the lamb for a burnt offering?
My son,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최요한 목사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두개의 동사는 ‘부르다’와 또 하나는 ‘보다’입니다. '부르다'는 영어로 ‘call’이고 히브리어로는 ‘카라’입니다. ‘보다’라는 동사 ‘라아’가 사용된 구절은 4절, 8절, 13절과 14절입니다. 우리가 흔히 ‘준비하시는 여호와’로 이해하고 있는 ‘여호와 이레’에서 사용된 히브리 동사는 ‘라아’이고 본래의 뜻은 ‘보다’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를 직역하면 ‘보시는 여호와’입니다. 22:14절에서 사용된 '라아'동사에 대해서 영어성경 KJV도 '준비하다'라는 뜻 보다는 '보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에서 ‘여호와 이레’를 ‘준비하시는 여호와’보다는 ‘보시는 여호와’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2절에서 하나님은 ‘네 아들’도 아니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말씀합니다.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100세에 얻은 아들,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아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독자, 하나밖에 없는 상속자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는지 그렇게 잘 아시면서 어떻게 이런 명령을 하시는 것인지, 너무도 잔인하고 매정한 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향한 ‘아브라함아’라는 부르심은 그렇게 잔혹한 명령을 주셔서 그를 테스트하시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괴롭고 번뇌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믿음으로 순종하였는데 그 믿음은 바로 하나님이 능히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단에 올려 놓고 칼을 잡고 이삭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급히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이 부르심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했다는 합격통지서 같은 부르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숫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숫양으로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는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부르고 이 성경말씀이 기록된 때까지도 사람들은 그곳을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즉 ‘여호와의 산에서 보이시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을 다시 부르시는데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하십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창할 축복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 그 씨로부터 천하만민이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메시야가 탄생하실 것임을 암시하는 말씀이고 그 메시야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역대하 3:1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땅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오르난에게서 금 육백세겔로 산 타작마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려던 땅이었고, 그곳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졌으며 그 후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 언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 성전과 골고다 언덕은 모두 모리아 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이고 하나님의 섭리인가요?
잔인하고 매정한 것만 같았던 하나님의 명령,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한 수천년 전의 하나님의 설계였던 것입니다. 한분 밖에 없으신 독생자, 외아들 예수님을 하나님은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십자가라는 제단에 번제 희생양으로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테스트는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화목제의 희생양으로 드리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암시였고, 아브라함이 이에 순종하여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했던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심이라는 두 동사의 실현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아들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헌신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 아들 대신에 숫양을 번제물 희생양으로 드리게 되는데, 이 번제 희생양은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대신한 속죄양, 곧 온 인류를 대신한 속죄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보십니다. 십자가는 이렇게 오래전에 준비되어졌던 것입니다. ‘보시는 여호와’ 그리고 속죄 어린양을 십자가를 통해 ‘보이시는 여호와’로 오래 전, 아브라함 시대에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호와 이레’ 즉 우리말 성경이 ‘준비하시는 여호와’라고 말하는 ‘보시는 여호와’를 통하여 우리를 보시고 또한 부르십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통해서 입니다. ‘여호와 이레’는 십자가를 말해 줍니다. ‘여호와 이레’는 십자가로 연결되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호와 이레’에는 희생제물되신 어린양 예수님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를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보시고 부르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부르십니다. 우리도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보시고 부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믿고 현실의 삶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이레’ 안에서 모든 것이 화목해지고, 화평해지고, 해결되고, 위로받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보시는 여호와, 즉 ‘여호와 이레’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더 가까이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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