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이유 (히 9:11~15) 20210627 주일설교말씀
- Glory Community
- Jul 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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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Jan 28, 2024
Why we are called by God.
최요한 목사
바티칸의 시스타나 성당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미술가인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장조’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큰 그림들이 있습니다. 천지창조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 이야기와 아담과 하와, 노아, 아브라함 등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각각의 인물들이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어떻게 당대를 살았는가 하는 것을 그림을 통해 느낄 수가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의 재림시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림 중앙에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계시고, 그 주변에는 사도들을 비롯해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로 올라가 주님을 영접하고 있습니다. 그림 아랫부분에는 지옥이 펼쳐져 있고 악마들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있는데, 그 분위기가 사뭇 살벌하게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면 미켈란젤로는 시스타나 성당에 성경의 첫 책과 마지막 책의 인물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영원 전부터 천지창조와 최후의 날을 설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직접 붓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지는 않으시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청사진, 설계도를 작성하시고 하나님의 창조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 ‘큰 그림’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 보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요?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오시는 날 우리의 구원은 완성될 것이고, 그 날에 우리는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우리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 그려져 있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살아왔는지를 그림을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곳에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지 않으시면 누구라도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으므로(요 6:65),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확실한 것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 목적과 계획, 섭리가 있으시다는 말씀이고 이것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설계’라는 의미가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15절의 영어성경 NIV 말씀은 “For this reason Christ is the mediator of a new covenant, that those who are called may receive the promised eternal inheritance--now that he has died as a ransom to set them free from the sins committed under the first covenant.” 이고, 이것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약속된 영원한 기업을 받을 수 있도록 첫 언약 하에서 그들이 저지른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기 위해 대속물로 죽으셨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즉 ‘약속된 영원한 기업을 받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약속된 영원한 기업’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새롭게 맺은 언약아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대제사장의 직분을 받아 십자가에서 자신을 화목제물, 즉 대속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옛 언약의 모든 부분을 인간들을 대신하여 완성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곱 마디의 말씀 중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대속물로 드림으로 구약의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공로가 아닌 철저하게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맺은 새 언약의 당사자들이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새 언약 백성이 된 것이고, 이것은 ‘약속된 영원한 기업’인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축복인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아버지께 양자로 입양된 자유인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되었으니 그 유업을 이어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지만, '아직’ 그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구원의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와 지향점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그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로운 언약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아들 같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12)”.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이와 같이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연약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러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노력도 우리의 지혜나 힘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의 노력이나 힘도 빛을 발하게 될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게 될 것입니다. 약속된 영원한 기업을 얻기까지 우리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의 큰 그림, 설계도에 합당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마지막 날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길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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