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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의 우선순위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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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arly church chose seven deacons for the First Order of Ministry (Acts 6:1-7)“


최요한 목사


폴 마샬이 쓴 ‘천국만이 내 집은 아닙니다’란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위해서도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란 복음성가 가사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혼란이 되기도 합니다만, 폴 마샬이나 복음성가 가사나 각각의 주장하고 싶은 주제는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둘다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전파보다 사회참여를 더 우선시하고 전도보다 구제를 우선으로 하는 교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다'는 의미의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돕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은 아무 때나 원한다면 도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예수님은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항상 함께 있지 아니 하리라는 말씀은 무엇인가?’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곧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계실 기간이 앞으로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을 먼저 섬기려고 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할 것은 나, 곧 예수님을 먼저 섬기는 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또한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일은 언제나 할 수 있고, 그리고 언제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을 섬기는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을 도외시하고 구제를 하는 일을 우선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제를 또한 도외시해서도 안됩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러한 예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초대교회도 그런 고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먼저인가, 복음전하는 일이 먼저인가? 초대교회가 더욱 번성하여 제자들의 수가 많아 져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보다 헬라인 그리스도인이 더 많아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헬라인들중에는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이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했다고 본문 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헬라파와 히브리파간의 구제에 대한 갈등은 초대교회가 교회의 사명과 본질을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이런저런 사회사업들을 시작해서 그것이 커지다 보니 교회의 본 사명은 제쳐두고 사회사업에만 전력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의 열두 사도는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모든 제자들을 불러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구제사업이 점점 더 커지니 믿는 사람들간에 구제로 인해 분란이 생기고 화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복음전파를 주 목적으로 하여 그것으로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복음 이외의 것으로 세상을 섬긴다고 하면 결국 제대로 섬기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잡음이 생기고 분열이 생깁니다. 교회가 복음을 제쳐놓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방법으로 어떠한 구제활동이나 사회사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교회 안에 알력이나 이권다툼이 생기게 해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동기가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교회가 구제의 문제로 분열할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자 사도들은 구제를 전담할 집사들을 선출한 것입니다. 그들은 구제활동이 문제가 된다고 해서 그것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담할 사람들을 새로 선출해서 맡긴 것입니다. 구제는 주를 섬기는 일에 우선해서는 안되지만, 교회가 언제나 해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겠다고 하면서 구제를 할 집사들을 뽑은 것입니다. 그러나 구제를 담당한 일곱 집사도 그들의 본 사명은 구제가 아니란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 중에 탁월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는 구제하다가 순교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돕고, 사회사업을 해서 사회구원을 이루는 것, 이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건설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먼저 주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파한 후에 할 일입니다.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사역에는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사역은 복음사역이고, 부사역이 사회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구제를 포기하거나 더 소홀히 하지 않고 더 잘하기 위해서 집사들을 선출하였듯이 구제는 교회가 세상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해야 할 복음전파를 위한 도구인 것입니다. 결국 구제를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선출했던 집사들도 자기들의 본연의 임무는 구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복음전파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다시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도 복종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7절 말씀을 보니 더 심히 많아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영광공동체교회도 초대교회와 같이 이렇게 교회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서 구원 얻는 백성들이 날로 심히 더해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의 본질인 하나님 섬김과 복음전파의 사역을 우선순위로 하여 열심히 사역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당연히 해야할 의무인 세상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도 열심을 품고 더욱 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가는데 앞장서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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